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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부출생신고, 아직도 어려운 이유오변의 법률cafe/가사 2025. 6. 12. 18:53
“내 아이인데, 왜 출생신고조차 못 하죠?”
— 미혼부가 마주한 현실의 벽
열아홉, 인생의 첫 출발점에 선 재민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재민(가명, 19세)은 대학 진학보다는 먼저 사회로 뛰어드는 길을 택했습니다. “스물아홉까지는 내 이름 걸고 식당 하나 열겠다”는 꿈을 안고, 동네 곰탕집에 취직해 하루하루를 땀으로 채워 갔습니다. 최저시급이었지만, 일손이 빠르다며 사장님께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다정한 또래 직원 지은(가명)과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은이 아이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몰래 떠난 부산행… 그리고 아이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에 두 사람은 당황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혹시 부모님이나 주변에 들킬까 봐 지은과 재민은 고민 끝에 재민의 외할머니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었고, 지은은 무사히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임신 기간에도 생계 문제로 자주 다퉜고, 출산 후 지은은 산후우울증까지 겪었습니다. 결국 아이가 태어난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지은은 아무 말 없이 재민과 아이를 두고 떠나버렸습니다.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를 대신해 재민은 혼자서 딸을 돌봐야 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출생신고였습니다. 그래야 병원 진료도 받고, 예방접종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인데, 왜 내가 출생신고를 못 하죠?”
재민은 동사무소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담당자는 “혼외자 출생신고는 원칙적으로 엄마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 제2항에는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혼인 외 출생자의 출생신고는 모(母)가 하여야 한다.”
즉, 재민이 아이의 아빠임을 아무리 주장해도, 지은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은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타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미혼부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인지’
이럴 때 필요한 절차가 바로 ‘인지’입니다.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 아버지 사이의 관계를 인정받기 위한 제도죠. 법은 미혼부가 인지를 통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 엄마, 그러니까 지은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 중 어느 하나라도 몰라야 법원이 출생 사실을 확인해줄 수 있다는 겁니다. 즉, 엄마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를 때만’ 미혼부 단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절차가 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민은 지은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주소는 몰라도, 같이 살았던 만큼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도 알고 있었죠. 이 경우 법원에서는 **“어머니 정보를 모두 모르는 경우가 아니다”**라며 인지 확인 신청을 각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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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변의 법률포커스
안녕하세요, 오변의 법률포커스 오경수 변호사입니다. 대한변호사협회 상속 및 후견전문 변호사로서, 여러분께 정확한 법률정보, 실제 소송수행 사례 등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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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법의 모순
아이 엄마가 연락이 두절됐다고 해서, 그녀의 이름까지 모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히려 아이를 낳기까지 함께 생활했다면, 이름은 당연히 알고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엄마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면’ 미혼부 단독 출생신고는 막히고 마는 것입니다. 재민처럼 아이를 책임지려는 의지가 분명한 아버지에게조차, 현실은 너무 차가웠습니다.
헌법불합치 결정, 그러나 아직 개정되지 못한 현실
헌법재판소는 2023.3.23.선고2021헌마975 전원재판부 판결에서 '혼인 중 여자와 남편 아닌 남자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한 생부의 출생신고'를 허용하도록 규정하지 아니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 제2항(출생신고의무자조항), 제57조제1항 및 제2항(친생자출생신고조항)이 혼인 외 출생자인 청구인들의 즉시 '출생신고될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습니다.
다만 입법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고자 심판대상조항들에 대하여 2025. 5. 31.을 기한으로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적용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5. 6. 현재까지 법률개정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 상담은 필수입니다
재민이 처한 상황처럼 미혼부의 출생신고는 인지, 친생추정, 성본 창설 등의 민법적 문제들과 얽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간단히 주민센터에서 양식 하나 작성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죠.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으나 법률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기존 법률을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법적 절차를 정리하고, 필요한 자료와 가능성을 정확히 따져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생명이며, 그 출발선에서 법의 문턱에 막혀서는 안 됩니다.
출생신고는 권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입니다
재민에게 출생신고는 단순한 서류 작업이 아니라 아이의 건강, 생존, 그리고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과정입니다. 법은 ‘아이 엄마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현실은 ‘그 엄마가 사라진 뒤에도 아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외칩니다.
부모의 혼인 여부가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현실 때문입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사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 제도는 더 단단하고 따뜻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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