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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분의 존재 필요성과 증여반환청구오변의 법률cafe/상속 2019. 6. 6. 23:41
상속에 있어서 미국이나 영국에는 없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유류분반환제도이죠. 유류분(遺留分)은 피상속인(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의 상속인이라면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도의 재산을 말하는데요, 우리의 유류분제도 또는 이와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에서는 아무리 피상속인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상속관계에서 균형과 형평이 중요합니다.
상속관계에 있어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지 아니면 상속인의 권리를 중요하다고 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라고 보아야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정치경제학 또는 철학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내용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영구불변하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유류분제도의 취지에 수긍할 수 있습니다.
불과 200년 전만 하더라도 노예는 사람이 아니고 소, 돼지와 같은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노예는 인간이 아니니 팔거나, 죽이는 것 모두 주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죠. 지금 도덕관념으로 보면 끔찍한 일인데요, 인간이 다른 인간을 물건처럼 소유할 수 있다는 사회에서는 인간도 물건이지만, 현대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즉, 법제도가 무엇을 소유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토지에서 나오는 광물에 관하여는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용인 근처에서 갑자기 석유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매장된 석유는 토지 소유자의 것이 아닙니다. 석유는 국가의 것이죠. 아무리 그 토지를 조상대대로 물려받았다고 하더라도 토지 밑에 매장된 석유에는 소유권이 미치지 않습니다. 법제도가 소유권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역시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한 재산 또는 그의 명의로 남은 재산에 피상속인의 처분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역시 법이 정하기 나름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상속인에게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도의 재산을 침해하는 피상속인의 증여 또는 유언의 효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유류분 제도과 왜 필요한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엄진섭씨(가명)는 윤복남씨(가명)와 결혼을 한 후 어렵게 청과물 유통 사업을 하였습니다. 두 부부는 자녀 엄대영씨(가명), 엄대현씨(가명), 엄효선씨(가명)를 키우면서 고생을 많이 했죠. 좋은 물건을 떼 오기 위해 늘 새벽 도매 시장에 나가야했고, 일손이 부족할 때에는 직접 배달서비스를 하느라 일 년 내내 5-6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엄진섭씨는 재산을 상당히 모을 수 있었죠. 하지만 평생 일만 한 부인 윤복남씨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윤복남씨에게 췌장암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불과 1년 만에 윤복남씨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을 잃은 엄진섭씨는 장남 엄대영씨의 도움으로 다시 영업을 시작했고, 그렇게 일상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엄진섭씨는 지인의 소개로 10살 어린 이선옥씨(가명)를 만났고, 3년을 만나다 재혼을 결심하였습니다. 엄진섭씨의 세 자녀도 이선옥씨가 아버지에게 잘 하는 것 같아 재혼을 말리지는 않았는데, 혼인신고가 되자마자 이선옥씨가 아버지에게 자꾸 재산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고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엄진섭씨의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그 재산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같이 모은 재산이니 함부로 계모한테 주면 안 된다고 하였고, 이선옥씨는 엄진섭씨가 죽으면 전처 자식들이 내쫓을 것이 뻔하지 재산이라도 주어야 한다고 엄진섭씨를 계속 괴롭혔죠. 결국 이선옥씨가 떠날 것을 두려워 한 엄진섭씨는, 이선옥씨가 원하는대로 재산을 증여하였습니다.
이 사안을 형식적으로 보면, 엄진섭씨는 자기 소유의 재산을 배우자인 이선옥씨에게 증여를 한 것이니 자식들이 이 증여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집안 사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엄진섭씨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은 엄진섭씨 혼자서 일군 재산이 아닙니다. 명의만 엄진섭씨로 되어 있을 뿐, 사망한 전처 윤복남씨에게 엄연히 지분이 있는 공동재산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죠. 다만, 윤복남씨의 지분이 얼마인지를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 진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엄진섭씨가 후처 이선옥씨에게 재산을 모두 주면 엄진섭씨의 전처소생은 실질적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소유의 재산까지 후처에게 뺏긴 셈이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과연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만을 중요하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전부는 아니지만, 전처 소생들이 후처 이선옥가 받은 증여재산 중 일부를 반환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동섭씨(가명)는 한 평생 마산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을 짓고 부인 유한경씨(가명)와 함께 1남 3녀를 양육하였습니다. 김동섭씨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장남 김광욱씨(가명)에게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김광욱씨 욕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재산을 물려받더라도 어머니, 누나, 두 여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김동섭씨는 장녀 김근영씨의 결혼을 앞두고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었고, 큰 딸 결혼식만 보게 해 달라는 기도가 무색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로부터 다세대 주택을 증여받았던 김광욱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두 여동생인 김미영씨(가명)돠 김지영씨(가명)에게 보증금 5천만 원과 월세 50만 원씩을 내고 못 내겠으면 나가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김근영씨, 김미영씨 그리고 김지영씨는 지금까지 온 가족이 같이 살아왔던 집에서 나가라는 김광욱씨의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 사안 역시 형식적으로 보면, 주택의 소유권자가 점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점유자에게 퇴거를 청구하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민사관계로 보기는 어렵다는 데에 다들 동의하실 것입니다. 소유자는 아버지로부터 주택을 증여받은 아들이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같이 살던 어머니와 여자 형제들입니다.
이 재산의 형성과 유지에 세 딸이 기여한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이 재산은 가족들의 생계와 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승계했다고 딸들을 내보낼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민법이 소유권을 보장하는 정신에 맞는 결과일까요?
이처럼 피상속인 명의의 재산은 오로지 피상속인만의 소유 재산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의 명의이지만 실제로 그 재산을 이룩하는데 다른 상속인들의 기여가 있었다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이 상속인들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기반이었던 경우에는 아무리 피상속인의 명의의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상속인들을 위해 최소한도의 재산은 보장되어야 하겠죠. 이러한 정의관념이 유류분 제도의 기본 정신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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