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른 자식이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는 방법

  민혜경씨(가명)는 중학생 때 친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민혜경씨의 어머니 민영미씨(가명)은 25년 전 김태석씨(가명)을 만나 민혜경씨를 출산하였죠. 당시 민영미씨는 김태석씨에게 부인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곧 이혼할 것이라는 김태석씨의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김태석씨의 부인 박효진씨(가명)는 남편이 외도를 해 혼외자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편의 이혼여부를 거부하였습니다. 민혜경씨의 출생신고가 급했던 민영미씨는 우선 아버지를 공란으로 하여 출생신고를 하였고, 매달 김태석씨로부터 양육비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민혜경씨는 25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석 달 전 민영미씨는 김태석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문병을 가고 싶었지만 박효진씨와 그 자식들에게 들킬까 가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민영미씨는 민혜경씨에게 병실을 알려 줬고, 민혜경씨는 다른 환자의 문병객인 것처럼 하여 먼발치에서 친부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정도만 확인을 하였습니다.

 

 

  민혜경씨처럼 부모님이 혼인신고를 한 법률상 부부가 아닌 사람을 혼인 외의 자, 줄여서 혼외자라고 합니다. 현행 상속법 하에서는 혼생자(부모가 법률상 부부인 사람)과 혼외자 사이에 상속분 차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김태석씨와 박효진씨의 자녀들과 김태석씨의 혼외자인 민혜경씨의 상속분은 동등합니다. 다만, 가족관계등록부상 민혜경씨는 김태석씨의 자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민혜경씨가 생물학적으로 김태석씨의 자녀라고 하더라도 가족관계등록부상 친자관계로 등재되어 있지 않으면 법률상으로는 남남입니다. 상속, 부양 등 신분법적인 관계가 발생하지 않죠. 그래서 민혜경씨와 같이 가족관계등록부 상에 부(父)란이 공란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족관계등록부상 친부가 아닌 사람이 부로 되어 있는 경우에도 결국 마찬가지입니다)에는 민혜경씨와 친부와의 관계를 잇는 별도의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인지 절차입니다.

 

 

  ‘인지(認知)’란 친부 또는 친모가 혼인 외의 자녀를 자신의 자녀로 인정하는 의사표시를 말합니다. 보통은 친부와 혼외자 사이에서 의미가 있죠. 친부가 혼외자에 대한 출생신고를 하면 이 출생신고가 인지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고, 친부가 혼외자에 대한 인지신고를 해도 됩니다. 이렇게 친부가 스스로 혼외자를 자신의 친자로 인정하는 행위를 ‘임의인지(任意認知)’라고 합니다.

  하지만 임의인지가 안 되는 또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친부가 법률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임의인지를 거부한다던가, 친부가 사망 또는 행방불명 되었다거나 또는 친부가 의식이 없을 수도 있죠. 이렇게 친부의 임의인지를 기대할 수 없거나 불가능한 상황에는 소송으로 인지를 해야 합니다. 이를 ‘강제인지(强制認知)’라고 하고, 구체적으로는 ‘인지청구의 소’라는 소송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위 민혜경씨 사안이 인지청구소송을 해야 하는 대표적인 사례이죠.

  이 소송이 있는 이상, 친부는 소송 자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다만 김태석씨가 뇌출혈로 의식이 없다면 민혜경씨는 김태석씨를 대신해 소송할 특별대리인 선임 청구까지 같이 해서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유전자검사가 되고 그 결과 김태석씨와 민혜경씨와의 사이에 친자 관계가 인정된다는 사실이 입증만 된다면 민혜경씨는 무난히 김태석씨의 법률상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 민혜경씨의 성씨가 민씨에서 김씨로 자동으로 바뀌는 것일까요? 법은 부모의 협의에 따라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고, 부모의 협의가 없는 상황이라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민혜경씨가 인지가 된 후에도 ‘김혜경’이 아닌 ‘민혜경’으로 살고 싶다면 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됩니다.

  이렇게 민혜경씨가 인지청구소송을 하여 인지가 되면 당연히 친부 김태석씨의 상속인이 되고, 배다른 형제들과 상속에 있어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